[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네 자매"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슬픔은 괴음으로 몸을 빠져나와 거실에 뒹굴었다. 대강 보아도 삶이 초라할 것 같은 얼굴들은, 어떤 무명 화가의 분노가 담긴 스케치처럼 강퍅하고 무미건조했다. 제구실을 못하는 표정들 때문에, 괴음이 거실을 점령한 이유를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네 자매는 지금껏 견뎌낸 그 어떤 절망보다도, 가장 가혹한 절망이 만들어낸 슬픔과 공황상태에 놓여있었고, 거기다 반평생의 한 까지 들쑤셔져,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요상한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의 제공자인 막내는, 괴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TV를 켰다. 한국 유명 연예인의 죽음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영정사진 속 그녀의 해맑은 웃음은, ‘죽음의 티켓을 받은 여러분, 두려워 마세요. 그리고 어서 이 곳으로 오세요. 이 곳은 새하얀 꽃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진 정말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이 곳엔 슬픔도 아픔도 없어요. 나를 보세요.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뒤를 따르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사람들과 그녀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녀의 하얀 목도리와 하얀 미소, 그리고 수천 송이 하얀 꽃들은, 그들의 발버둥을 의미없는 과장된 행위로 보이게 했다. 어쨌든 TV 화면은, 세상 모든 사람이 울고 있으니, 당신 또한 울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네자매에게 주었고, 비로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구멍을 활짝 열어 슬픔을 토해내게 했다. “엉엉엉, 아이고 아이고, 엄마, 엄마,” 저마다 토해내는 방식은 달랐지만, 통곡의 끝은 없을 것 같았다. 막내만이 단정하게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좋겠다. 저 여자는 제 목숨을 자기 의지로 거뒀네.” 막내의 한 마디는 절망의 핵을 터트렸고, 우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고, 거실바닥을 긁으며, 그 절망을 표현했다. “딩동 딩동 딩동….” 경쾌한 기계음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통곡을 한 순간에 멈추게 했다. 집 주인인 막내가, 문 쪽을 흘낏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TV로 돌렸다. 우리의 통곡도 계속 이어졌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초인종이 연이어 울렸다. 무엇이던 세 번이 넘어가면,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가시를 돋게 한다. 동생이 거칠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Are you ok? What happen?” 옆집 사는 백인 노인이 부인과 함께 놀란 눈을 말보다 먼저 안으로 들이밀었다. “I am ok. We watching tv drama. Sorry.” “Oh, I understand.” 백인 노인은 자신과 아내도 슬픈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둥, 한참을 떠들다, 계속 시청하라는 말을 남기고, 문까지 닫아주는 친절을 보였다. “미친놈 오지랖도 넓어.” 작은 언니가 닫힌 문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백인 노인의 방문은, 우리의 울음을 울음 끝도 남기지 않고 멈추게 했다. 우리 모두는 TV 속의 죽음으로 슬픔을 이동했다. 망자의 남동생이 가슴 깊숙이 사진을 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남자이기 때문에, 소리 내지 못하고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더욱 애처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우린 우리들 가슴에 안긴 막내의 영정사진을 떠올리며, 또 다시 통곡했다. “언니, 나, 영정사진 무엇으로 하지? 저 여잔 영정사진도 예쁘네.” 이미 화면 속으로 들어간 막내가 힘없이 말했다. “야,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울어주니까, 네가 정말 내일 당장이라도 죽는 줄 알아?”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나는 친구도 없고, 남편도 없는데, 박 서방, 나 죽으면 와주기나 할까?” “미친년, 요새 세상에 암이 병인 줄 알아? 암 걸리고도 팽팽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 놈은 또 왜 찾아?” 그래도 작은 언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나와 큰 언니보다 덜 감지한건지, 동생의 말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뿌릴 땐, ‘사람과 시간과 바람소리’ 틀어줘. 아주 크게. 애들 말고, 내가 이 세상에 한 순간 머물렀었다는 증거가 또 뭐가 있을까. 저 여잔 이름도 남겼고 필름도 남겼는데. 세상에! 나는 뭘 하며 산거야 지금껏. 사는 게 죽는 거라는 걸, 왜 생각 못하고 살았지?” 막내는, 행운보다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삶에서 제외시킨 자신의 미련함을 힐책했다. “암을 정복한 사람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란다. 그러니 너도 정신 줄 놓으면 절대 안돼.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야무지고 독하게, 네 몸에서 쫓아내버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니? 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기검진을, 계획도 없이 갑자기 하게 됐겠어? 너 살리려고 그런 거야.” 큰언니가 애걸하듯 말했다. “우리 아이들한테 뭘 해주고 죽을까? 애들 아빠한테 아이들 뺏어서 벌 받았나봐. 내 자존심 살리겠다고 천륜을 갈라놓았으니? 그렇다면 신은 누구 편인거지? 간통 한 자를 벌해야지, 정숙하고 모범답안처럼 산 나를 벌하고 있잖아?” 막내는 항상 성경책을 손에 쥐고 있는 큰언니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큰 언니는 고통스런 눈으로 대답할 뿐 이였다. ‘아니란다. 사랑하는 동생아.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 너를 벌하는 게 절대 아니야, 기다리자, 기다려보자’라고. 죽음은 오디션에서의 ‘땡’ 소리와 같다. 기회를 잃은 자와 얻은 자의 대화는 절대 합쳐질 수 없었다. 막내와 우리의 대화가 그랬다. 한 달 전, 가구점을 운영하던 둘째언니가 파산했다. 몽땅 털어 넣고 시작한 가구점이 2년도 안돼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가공할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언니가,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미안함과 막막함으로 연락도 못하고 있을 때, 작은 언니로부터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금식이야. 꼭 지켜야 돼.” 금식기도의 참여로 면죄부를 받은 우리는, 금식 뿐 아니라 철야기도까지 했다. 우리의 합심기도가 가구점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다음날, 작은 언니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종합병원이었다. “뭐야? 너 왜 우리를 여기 데리고 온 거야?” 겁 많은 큰 언니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장만은 지키겠다는 듯, 거친 손을 심장에 갖다대며 물었다. “언니!” 나는 더 이상의 절망적인 소식은 전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함을 담아, 작은 언니를 나지막이 불렀다. 막내는 이 상황을 빨리 해명하지 않는 작은 언니에게,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야, 야 놀래지들 마, 그런 새가슴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우리 한 번도 건강검진 안 해 봤잖아. 물론 그럴 형편도 못 됐지만. 이번에 우리 사총사 건강 검진하자.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우리가 누구야? 옛날 용산 땡땡거리 주름잡던 골목대장들이잖아. 가진 것 없이, 부모 없이 살아왔으니, 목숨만은 세상사람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작은 언니는, 너무 가냘파 자신의 의도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불끈 쥔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건강 검진 받는데, 운명과 투쟁까지 선포하는 언니의 허전한 마음이 전해졌다. “비싸잖아? 얼마나 비싼데. 언니 미쳤어?” “어차피 파산이야. 남은 카드로 기분 한번 내려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거든. 여행을 갈까 했는데, 각자 생활도 있고 해서, 그것보다 이것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이걸로 했어. 내가 이 짓 안하면, 우린 병으로 죽어도 왜 죽는지, 언제부터 죽음을 달고 살았는지, 모를 거야. 하자, 하고, 건강하게 남은 인생 즐겁게 살자.” 작은 언니는 언제나 그랬다. 어릴 적부터 우리보다 생각과 행동이 앞섰다. 섭섭할 만큼 무관심하며 자신만 챙기다가도, 굵직굵직한 결정은 도맡아 처리했다. 큰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부모님은 지독한 가난만 남겨놓고 한달 간격으로 돌아가셨고, 우린 큰 언니를 엄마 자리에, 작은 언니를 아빠자리에 앉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작은 언니는 지금껏 자신의 삶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챙겼고, 중요한 결정을 주도했다. 우리 집에는 항상 학교에서 주는 급식 빵이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학용품이며 수건, 비누 등 생필품이 모자람 없이 쌓여있었다. 작은 언니는 새들이 먹이를 나르듯, 생필품을 집안으로 날랐다.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 어린이날이면 언니는 더욱 바빴다. 공짜로 배급이 시행되는 어떤 곳이건 달려가, 수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기어코 작은 가슴 가득, 물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자존심, 큰 언니의 부끄러움, 막내의 철없음을 대신하기 위해서, 작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되어야 했다. 남자들과 주먹싸움으로 세력을 장악하고, 부모의 부재와 가난이 만들어낸 선생님들의 지독한 괄시와 편애에도, 거침없이 저항하며 투쟁했다. 운동회 날에는 제일 앞에서 목청 터져라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고, 어떤 행사건 우리를 끌어다 맨 앞에 세웠다. 지금껏 작은 언니는,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가 뒤집어씌운 ‘아비 부’의 의무를, 처절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계획 또한 낯설진 않았지만, 언니의 표정에 무언가 단호함이 엿보여,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싫어. 난 안해.” 큰 언니가 몸을 돌려 차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언니가 큰 언니를 쫒았고, 그 뒤를 막내와 내가 따랐다. 큰 언니가 몸을 돌린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겨워서 그래. 참 열심히도 산 우리 자매. 그런데 누구 하나 내 놓으란 듯, 잘살지 못한 게 억울해서 그래. 나까지 이렇게 됐으니, 속상해서 그런다구.” “내 기분 모르겠어? 언닌 동생들 몸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걱정도 안돼? 그러다가 동생들이, 무슨 병이라도 걸려 치료도 못 받고 죽으면, 원통해서 살 수 있겠어?”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작은 언니 말에, 거친 언니의 발걸음이 멈췄다. “하자. 어차피 없어지는 돈이야. 이제 내가 뭘 더 해 줄 수도 없어. 응? 언니.” “그래 하자. 하지만 내가 낼 거야. 네 말대로 동생들 건강 챙기는 건 큰 언니인 내 몫이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바보로 만들래? 내가 변변치 못해서겠지만, 나한테 상의라도 했어야지. 왜 금식하는지, 어디로 끌려오는지도 모르고, 이 자리에 섰어야 하겠니?” 큰 언니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엄마와 아빠 자리에 큰 언니와 작은 언니를 구별해 앉혔는지, 그 현명함에 감탄하며 살고 있다. 큰 언니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지만, 작은 언니는 섬뜩할 만치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자리가 바꾸어졌더라면, 성격도 바꿔졌을까? 모두의 머리가 주저없이 흔들릴 만큼, 가능성은 희박했다. “미안해 언니. 내가 생각이 짧았어. 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서다보니.” “가자, 가서 샅샅이 검사 맡자, 잡초처럼 살아온 우리한테, 감히 어떤 병균이 들어와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 속 시원히 해보자.” 말을 끝낸 큰 언니가 다시 거친 발걸음을 병원으로 옮겼다. 우리는 그 뒤를 또 다시 뒤따랐다. “비쌀 텐데. 큰 언니가 무슨 돈이 있다구.” “얼마 정도 될까? 우리도 보태자.” 막내와 나는 숨죽인 소리를 주고 받으며 잔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언니는 가방을 열어 카드 세 장을 내밀었다. 하나로는 한도가 안 되리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작은 언니가 재빨리 자신의 카드를 간호원 손에 쥐어줬다. “아니요, 이것으로 결제하세요.” 큰 언니의 성난 목소리에 간호사가 어리둥절해하며 작은 언니의 카드를 내려놓았다. “이걸로 하세요.” 작은 언니가 또 다시 카드를 간호사 손에 쥐어줬다. “왜 들 이러세요. 저기 가서 의논하고 오세요. 왜 여기서 이래요. 카드로 내면서.” 간호사가 날카롭게 쏘아댔다. 작은 언니가 “뭐 이런 게 있어?”하며 자신의 카드를 그녀 앞에 던졌다. 싸움이 날 것 같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큰 언니가 당황해하며 자신의 카드를 손에 넣고, 작은 언니를 뒤로 잡아끌었다. 그렇게 해서 작은 언니의 카드가 미끄러지듯 카드기에 그어졌다. “내가 계산해서 둘째 줄 거야.” 큰 언니는 못내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중얼거렸다. “그래 언니 우리 각자 것 계산해서 작은 언니 주자. 그러면 되지?” “얘들이 왜 이래, 내가 낼 거라니까.” 큰 언니는 금방이라도 한 바가지 쏟을 듯,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며 화를 냈다. “알았어, 알았어. 큰 언니가 내. 고마워 언니.” 모든 풍요를 완벽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라면, 우리에겐 재물이나 행운이 없는 대신, 차고 넘칠 만큼의 우애와 사랑이 있었다.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서로 뭉쳐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 몸살이라도 나면, 모두 모여 그 집에서 밤을 지새웠고, 자신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니나 동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더 만족스러워했다.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의 소요는 지나가고, 우리는 즐겁게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작은 언니는 열 다섯 가지가 되는 정밀검사를 신청해 놓았다. 각자 다른 검사를 시작으로 돌아가며 검사를 받았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당연해 하며, 승리자처럼 미소를 주고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우리를 함께 불러 앉혔다. 그리고 성적을 불러주듯, 한 명씩 건강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잘 보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성적표를 기다리듯, 가슴이 조였다. 큰 언니는 류마티스 증상이 있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외에는 아주 정상이라며 ‘정상’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언니의 논바닥처럼 갈라진 혈색으로 보아, 비정상이 정상이지 못한 것에 아쉬워 하는 듯했다. 작은 언니는 맥박수를 포함한 모든 수치들이, 일반적인 기준보다 약하지만, 별 문제점은 없다고 했고, 나 역시, 쓸개에 작은 혹이 있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막내였다. 막내 차례가 되자, 그의 심각한 표정의 이유가 막내로 인한 것이라는 듯, 역설적인 온화함으로 표정을 전환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자궁경부에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상태로 보아 암일 확률이 큽니다. 어떤 방법의 치료가 가능할지,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지금 바로 정밀검사를 합시다.” 소리가 귓속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귀는 소리를 차단했다. 의사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그저 입을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 귀에서는 지독한 이명음이 계속됐다. 큰 언니는 얼굴에 회칠을 해놓은 듯했고, 작은 언니는 표독한 얼굴로 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막내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진료카드를 넘겨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큰 언니가 부들부들 떠는 손을 겨우 합장시켜 가슴에 올리며 물었다.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쇠꼬챙이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침착하게, 작은 언니가 말했다. 불행의 바람이 불어오면, 작은 언닌 숨을 참는 고통을 견디고라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큰 언닌, 입을 벌려 그 바람을 전부 들이쉬고, 끝도 없이 비틀거린다. 나는 막내의 몸에서 희망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내 손을 힘껏 쥐었다.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닌가요. 정밀검사도 해보지 않고 암이라고 단정짓고 있잖아요,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거라는 것 쯤은 잘 알고 계실 텐데, 확실하지도 않은 확률로, 환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암이 아니면, 암이 절대 아니겠지만, 제 동생이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겪게 될 정신적인 충격, 생각해 보셨나요?” 작은 언니는 제 정신을 차린 듯, 침착함을 벗어버리고 언니 특유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병을 감추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암 같은 건 본인이 빨리 알고, 낫겠다는 의지와 신속한 치료가 중요한 겁니다.” 의사는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암이라고 확정짓는 겁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작은 언니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나, 그를 내리칠 것처럼 한 걸음 다가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궁경부암은 골반까지 전이되지 않으면, 자궁만 절제하면 되고, 연세도 있고 하니 크게 심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당황한 의사는, 자기 나이의 여인들 앞에서 세우고 싶었던 권위를 내던지고, 내뱉은 말을 추스르기에 바빴다. “막내 재검사 받아야 한다잖아.” 나는 작은 언니를 밖으로 끌어냈다. “아무 것도 결정난 것 아니야, 막내야, 마음을 다잡고 먼저 나가지 말자, 설사 암이라고 하면, 이 언니들이 가만있겠니? 네 몸에서 암 병균들이 처참하게 말라죽게 만들 거야. 언니들 믿지?” 큰 언니는, 막내의 발아래 무릎 꿇고, 자신 입에서 빠져나온 말이 도망이라도 갈 듯,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가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내의 감정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오십대 오십이야, 부정적인 오십을 먼저 생각하면 안돼, 긍정적인 오십으로 부정적인 오십을 쫒아내. 우린 잡초야. 어떤 제초제로도 우릴 죽일 수 없어.” 작은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막내옷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재검사를 끝내고 나온 막내의 얼굴은 도리어 평온했다. 막내를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세상에 내보내 준 것에, 처음으로 부모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희망은, 한 낮의 태양아래 저항도 못하고 녹아내렸다. 병원 문을 나선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찌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동생을 위로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충격으로 위가 뒤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짜증났다. “나이가 들면 생각의 뿌리에 접근하지 못해, 그게 두려움으로 인한 자의적 현상인지, 아니면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우리는 울 때 울지 않고, 웃을 때 웃지 않는, 감정 장애자들이 되는 거야, 그런데, 한 가지 더 왕성해지는 게 있어. 식탐이야 식욕. 조각난 욕망들이 그 쪽으로 모여드는 거지. 우린 그 마지막 욕망에 충실해야 돼, 그리고 사랑해야 돼. 절대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 안돼, 알았지?” 막내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었다. 삶에 지친 언니들이 끼니라도 거를까봐, 이뤄 논 것 없이 아귀처럼 먹는 것에만 신경 쓰는 스스로를 부끄러워 할까 봐.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굶고, 오후 세 시가 지나가는데도, 막내는 평상시처럼 언니들 먹을 것을 챙기지 않았다. 허기가 맹렬히 고개를 들며, 절망까지 덮쳤다. 속이 느글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리 나지 못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배에 힘을 주었다. 언니들도 그런가, 세심히 살폈지만, 배가 고파 창백한 건지, 충격으로 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다니, 배가 고프다니… 동생 말대로 나는 감정의 장애자인 거야.’ “언니, 배고프다. 떡 보쌈 먹으러 가자.” 작은 언니가 말했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들 이래, 우리 엄청나게 배고프잖아, 막내가 죽어? 막내 너 배 안고파?” “고파, 누가 먼저 밥 먹자고 하나,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나 내가 먼저 먹자고 했잖아. 이젠 안 그럴 거야. 언니들 위장 언니들이 챙겨.” ‘아, 다들 배가 고팠구나.’ 그때서야 나는 배에서 힘을 뺐다. 식당에 도착해 삼겹살을 시킨 동생은, 짜증날 정도로 얇게 편 떡에, 삽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파김치와 마늘 그리고 매운 소스를 듬뿍 올려 한동안 게걸스럽게 먹기만 했다. 그저 귀엽게만 보이던 동생의 입이, 그토록 커다랗고 탐욕스러운지 그때 처음 보았다. 먹어도, 먹어도, 어딘가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막내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동생의 입이 잠시 쉴 틈도 없이,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쌈을 동생에게 연거푸 안겼다. 우리는 동생 입에서 새어 나올 슬픔을, 꾸역꾸역 떡보쌈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들 해. 암으로 죽기 전에 배 터져 죽겠어. 나한테 해 줄 말들이 그렇게도 어? 뭐가 그렇게 당당치들 못해? 이집 삼겹살 전부 동내고 가겠네.” 동생의 핀잔에, 어릴 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동작이 재빨리 멈춰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래? 네 배가 이제 불렀다 이거지? 그럼 이제 우리도 배터지게 먹자. 언니 먹어, 셋째 너도 먹고.” 작은 언니는 막내 입에 들어가다 만 것을 큰 언니 손에서 빼앗아, 자신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언제나 어정쩡한 상황을 무마시켜 주는 작은 언니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보쌈이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막내의 말을 흘려버리고, 우리는 막내 집까지 따라 온 것이다. ‘가엾은 것, 혼자되어 오기와 악다구니만으로 세상 버텨 온 것도 억울한데, 이게 무슨 날 벼락이야.’ 차라리 이렇게 쏟아내고, 막내와 함께 신을 저주하고, 직무유기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터를 잡은 절제된 감정은, 이런 원초적인 감정 폭발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유는, 험난한 인생의 반복, 혹은, 오래된 좌절로 인한 충격의 자정작용이었다. “암은 모르면 그냥 지나간다고도 하던데, 내가 검사를 괜히 하자고 했나봐.” 작은 언니가 울음 끝을 참지 못하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되로 막을 것, 말로도 막지 못하는 게 병인데. 천만다행이지 미리 알았으니.” 이미 노안이 시작된데다, 퉁퉁 붓기까지 한 눈으로 인해, 사물의 초점을 맞추기 힘든 듯, 큰 언니는 연신 눈을 비벼대며 말했다. “야, 그 TV 꺼버려.” 작은 언니가 계속되는 장례행렬의 반복된 화면으로 인해, 동생의 슬픔에 몰입할 수 없다는 듯, 짜증을 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리모콘을 눌렀다. 영정 사진 속에 있는 연예인이, ‘이건 완벽한 연극입니다’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가만 있자,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들하고 얼마나 헤어져 있어야 하는 거지? 언니들 평균수명까지 악착같이 살 거야? 내가 없는데도? 평균수명이 팔십이라고 하니까, 큰 언니는 이십년, 작은 언닌 이십 오년, 셋째 언닌 삼십년. 많이도 남았네. 정말 내가 너무 일찍 죽는 거네. 왜 이렇게 평균수명이 길어진 거지? 그러고 보면 웰빙 타령도 헛짓 하는 거야. 우리 조상들은 모두 웰빙식품 먹고 살았잖아. 그런데도 환갑이면 잔치했는데, 지금은 농약이니 뭐니 해도, 수명이 한없이 늘어나잖아.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야, 그러니 너무 먹거리에 신경 쓰지 마, 죽을 팔자면 나처럼 이렇게 허망하게도 죽으니까.” “너 말 잘했다. 그래, 놀라운 의학의 발전이지. 네가 걸린 암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이십년 전에 뭘 했지? 직장생활 했네? 즐거웠나? 아니, 즐겁지 않았어. 특별한 일도 없었고, 뭐 죽도록 사랑한 사람도 없었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동정에, 어리석게도 내 인생을 던져버린 실수나 저지르고, 배시시 웃어볼 추억도 없고. 앞으로 이 삼 십년 더 산다고 특별한 일 있겠어?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 억울하지도 않아. 못쓰고 죽을 만큼 벌어논 돈도 없으니 배 아플 일도 없고, 자식들도 베타맘처럼 키웠으니 당당하게 서 있을 거고, 남긴 것이 없으니 치고 박고 싸울 일도 없을 테고, 도리어 우리처럼 뭉치겠지? 가끔 언니들이 들여다 봐 주면되고. 무덤까지 함께 들어간다고 울어댈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쌈박하네,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살았지? 이렇게 될 운명인지 알고 산 것 같지 않아?” 속마음이 정말 어떤 걸까. 실제로 저렇듯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막내의 지나칠 만큼 차분한 감정과 말투는,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고 인물 났네. 암 선고 받고, 내 동생처럼 쿨한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쿨하지 않을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언니? 다 죽을 거잖아.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억울한 건 내 목숨 내가 거두지 못하고 뒤통수 맞았다는 거야,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지각한 것처럼 뛰어가야 하잖아.” “이리와 폼 잡지 말고. 이제부터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 큰 언니가 동생의 공허한 말들을 허공에서 끄집어 내렸다. “일단 검사결과를 보자. 너도 들었지만, 상황이 안 좋으면 자궁을 들어내면 돼. 애 낳을 것도 아닌데, 우리 나이엔 아무 필요 없는 자궁이야. 너무 앞서나가 소설 쓰지 말자, 더한 병들도 완치되는데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야. 상황이 심각했으면, 당장 입원하라고 했을 거야. 맞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입원하라는 말은 없었잖아? 너도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돌아가신 엄마가 네가 아프기 전에 미리 알려 주신 거야. 치료하라고. 엄마가 우리 넷 중에 너를 제일 예뻐하셨거든?” “그러니까 나를 제일 먼저 데려 가시려나보지.” “야, 언니가 말하면 들어.” 날카로워진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너는.” 큰 언니도 소리쳤다. 억장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좀 해보라며 비명도 못 지르고, 어떻게든 혼자 수습하려 비틀거리는 동생, 그런 동생에게 변변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무능한 나. 그래서 나는, 작은 언니처럼 소리를 지를 수도, 큰 언니처럼 자분자분 막내를 달랠 수도 없이, 침묵만을 고집했다. “언니, 종이와 펜 좀 갖고 와.” 동생은 나한테 갖다 줄래? 가 아니라 갖고 오라고 명령했다. 그건 죽음을 가까이 둔 자의 특권이었다. “뭘 하게?” “정리 해야지. 내가 하고 싶은 것 적을 거야. 먹고 싶은 것, 더 사랑하고 싶은 것, 용서받고 싶은 것들 있잖아. 나한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도 구하고. 원수도 갚고 가야지. 죽도록 뛰어왔는데, 결국은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앞이고, 나에겐 그냥 뛰어내려야하는 선택만이 주어졌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지 궁금하지? 기분 같은 건 없어. 도리어 살아 오면서 이렇게 명확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정리가 잘돼. 타고난 수명의 반 정도 되서, 사람들을 이런 죽음의 기로에 의무적으로 서게 한다면, 그 후의 삶은 아주 선하고 겸손할 거고 욕심 없는 삶이 될 거야.” “죽음은 사람들이 어찌해볼 영역이 아니야.” 작은 언니가 모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적어봐라.” 나는 아직 며칠이 남아있는 달력을 찢었다. 찢겨진 며칠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주머니에 굴러다니는 잔돈 몇 푼과 같다. 요즘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그랬다. “언니, 커피도 한 잔 타.” 큰 언니가 나에게 얼른 시키는 대로 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저게 자기만 죽나.’ 얼마나 인간이 이기적인지. 깍듯하게 언니 대접 받아왔던 습관이 깨지자, 동생의 죽음이 화두인 이 상황에, 자존심이 꿈틀대다니 말이다. “샌드위치라도 만들까?” 부끄럼을 숨기기 위해, 동생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그럴래? 그럼 양배추 썰어 넣고 계란에 풀어서, 왜있지? 우리 한국 갔을 때 명동거리에서 먹었던 샌드위치? 그거랑 똑같이 해. 버터 듬뿍 넣어 빵 구워.” 끝까지 명령조였다. 그래도 동생의 주문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나는 동생이 원하는 맛을 살리기 위해, 이년 전, 거센 늦가을 바람 속에서 샌드위치를 만들던 억센 여인의 손을 떠올렸다. 그녀의 손이 어디로 갔었는지, 무엇이 들려졌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그 때 동생은,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두 개를 먹어치웠었다.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같은 재료로, 같은 맛을 낼 수 없다는 것. 그건, 수 십 년을 살아왔음에도, 매번 허우적거려야하는 안타까움과 같았다. 이것이 동생에게 해주는 마지막 음식? 자꾸 불경스럽게 앞서 나가는 생각을 잘라내기 위해, 채썰어야 하는 양배추를, 잔인할 만큼 토막내고야 말았다. 결코 위로되지 못할 말과 표정으로, 죄인처럼 동생 앞에 있지 않고, 각자 어디론가 숨어들어, 마음껏 통탄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막내가 커다란 달력 위에 힘있게 써내려가는 의미 없는 단어들을, 언니들은 심각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지 마.” 동생이 명령했다. 재빨리, 작은 언니는 소파에 기대 눈을 감았고, 큰 언니는 카펫 위에 떨어진 먼지들을 집어 올렸다. 가끔 고개를 들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생의 눈은, 죽음으로의 여행에 대한 호기심까지 담고 있는 듯 반짝거렸다. 사인분의 샌드위치가 만들어질 때까지도, 동생의 쓰기는 끝나지 않았다. 샌드위치가 동생 앞에 내려져도, 쓰기는 계속됐다. 동생은 두껍고 약간은 번질거리는 희고 넓은 지면에서, 많이 채울 수 있다는 넉넉함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막내는 하고 싶은 일, 즉 행동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기록으로만 남기려는 듯, 작은 기울어짐도 없는 고딕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가고 있었다. 커피향기는 온기를 쫓아 우리를 벗어나고, 버터가 빵의 숨구멍을 완전히 막았을 때, 막내의 기록은 멈췄다. 막내가 샌드위치를 빨리 입 속으로 집어넣어 주기를, 나는 조바심으로 기다렸다. 식게 되면 막내가 원하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인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던 이유가, 갓 후라이팬에서 집어 올려진 데 있다는 사실을 막내는 기억하지 못할 거며, 더구나 이미 자신의 미각이 슬픔과 좌절로 인해 유기되었다는 것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쓰기를 멈춘 막내가, 한 손에는 빼곡히 채워진 달력을, 다른 손에는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샌드위치의 모양이 어떤지, 양배추가 어떻게 썰려졌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비로소 두 언니도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언니, 그 맛이 아니잖아. 그렇게 간단한 것도 못 만들어?” 한 입 깨어문 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식어서….” “그만둬. 언니는 항상 변명이야. 자신이 잘못한 거는 하나도 없어. 설탕을 약간 뿌려야지.” “설탕이 들어갔었나?” “그래 셋째야, 그때 그 아줌마는 설탕을 약간 집어넣더라.” 큰 언니가 더 이상의 말의 번짐을 막기 위해 동생 편을 들었다. “못 먹겠네. 맛이 없어. 커피가 식었네. 따뜻한 걸로 갔다 줘.” 작은 언니가 다시 일어나려는 나를 주저앉히고, 부엌으로 갔다. 그렇게 심통을 부려서라도, 정신을 허물어뜨리지 말아주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뭐 다른 것 먹고 싶은 것 없니?” 작은 언니가 냉장고를 열며 막내에게 물었다. “글쎄, 아주 맵게 떡볶이가 먹고 싶긴 한데. 떡이 없어.” 큰 언니가 다시 일어나려는 나의 무릎을 내려 누르고, 자신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사러 가게?” 막내가 태연스럽게 ‘사러 갔다 와’ 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맛있게 해줄게. 오뎅도 넣을까?” “마음대로.” 큰 언니는 무릎을 완전히 펴지도 못한 채, 절뚝거리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도망가고 싶었지만, 나는 큰 언니를 도망시켰다. 작은 언니가 커피를 들고 동생 앞에 앉았다. 동생이 한 모금의 커피를 입에 담고, 종이를 작은 언니에게 내밀었다. 한참을 읽어 내려간 후, 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미친년’이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막내가 종이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보고 싶지 않았다. “자 읽어봐 네 동생의 소망사항.” 빼곡한 글씨 뒷면은, 뭉크의 ‘절규’였다. 작은 언니는 자신의 비명을 들으라는 건지, 아니면 동생의 비명을 들으라는 건지, 그림 쪽을 내게 내밀었다. ‘눈도 좋지 않은 큰 언니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을까.’ "이제, 삶보다 죽음과 더 가까운 동생이 갑자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보니 나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1. 남은 내 인생만 생각하기. (이것엔 세 줄의 검은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2. 내가 벌어 논 돈, 내가 다 쓰고 가기. 3. 사고 싶었는데 비싸서 못 샀던 것들, 기억해내서 사기. 4. 다른 남자와 적어도 열 번 섹스하기. 5. 카지노에 가서, 행운에 목매지 말고, 무조건 질러보기 6. 개고기 먹어보기 7. 낚시 해보기. 8. 유럽 가는 크루즈 간판 위 달빛 아래서, 왈츠 추기. 9.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 내려다보기. 10. 정민 엄마 뺨때리기 11. 세 언니 부려먹기 12. 꿔준 돈 모두 받아내기 (언니들 포함). 13. 아이들과 정 떼기. 14. 바이올린 배워 한 곡이라도 연주하기. . . . 30. 죽는 날, 내가 정하기. “너 지금 장난하니? 셋째야, 우리 괜히 벌벌 떨었나봐 애 앞에서.” “장난이라니?” 동생이 발끈했다. “삼십년 두고 해도 될 일을, 몇 달, 아니 며칠 만에 해치워야 될지도 모르는데, 장난 이라니?” 장난은 아니다. 심각하면 어김없이 왼쪽눈썹 끝이 샐쭉 올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유난히 진하고 숱이 많은 막내 눈썹은, 약간만 모양이 변해도 금방 표시가 났다. “써 놓고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도 많았어. 제대로 해 본 것도 없고.” 이제, 삶보다 죽음과 더 가까운 동생이, 갑자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나한테 꿔간 돈들 모두 내놔야해. 그래야 빨리 정리될 수 있거든.” 동트기 전 겨울 하늘의 단정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막내가 말했다. “언니들은 나보고 돈, 돈, 돈, 한다고 핀잔했지, 그러면서 많지도 않은 푼돈을 언제나 나에게 꿔갔고. 나는 그 푼돈을 언니들에게 꿔 줄 때마다, 잔돈 부스러기 같은 언니들 인생이 서러워 울었어. 어쩌면 나는, 언니들에게 돈을 꿔주기 위해 악착같이 쓰지 않고 모았는지도 몰라. 얼마 모이면 언니들 어디 데리고 가야지, 무엇을 사줘야지, 어떻게 하면 언니들이 행복할까? 아비 없는 내 자식들보다 더 신경을 썼어. 믿던지 말던지.” 언니들 속에 묻혀 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죽기 전에 찾고 싶은 것이었을까. 막내는 어제의 막내가 아니었다. 막내 입에 담길 말들 또한 아니다. “그래, 그래.” 작은 언니는 동생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며, 힘겹게 큰 언니의 자리를 대신했다. 평심을 깨고라도 우리들 속에 자신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막내의 처연함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돌아올 때가 지났는데도 큰 언니는 오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제일 먼저 수선을 피웠어야할 막내는, 한 번도 큰 언니를 들먹이지 않았다. 도리어 걱정을 하는 우리를 향해, 눈으로 핀잔을 건넸다. ‘자, 나를 걱정해줘. 가슴이 찢어지도록 나를 걱정해야 돼.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말고, 각자의 머릿속엔 나만 존재해야 돼. 언니들은 당연히 그래야 돼.’ 그러기를 동생은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놓고 큰언니를 걱정하지 못했다. 얼굴과는 반대로, 두 귀는 문 쪽을 향해 활짝 열려, 바람에 농락당하는 나뭇잎 소리까지 끌어들였다. “그래, 이것을 모두 너 혼자 해볼래?” “어떻게 나 혼자 해. 언니들이 함께 해야지. 당연한 것 아니야?” “음, 그럼 남자와 섹스 하는 것, 이거는?” “언니.” 동생은 종이를 집어던지며 소리 질렀다. “기껏 죽음 앞에서 해보고 싶다는 것이 이건가 싶어서 하는 말이야, 이것아.” 그 때 큰 언니가 발로 문을 밀며 들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지, 숱도 없는 파마머리가 수십 마리 새들이라도 품을 듯 부풀어 있었고, 노안의 눈을 얼마나 부릅떴는지, 흰자위에 붉은 수채와 물감이라도 엎질러 놓은듯했다. 언니는, 넘치는 슬픔을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는지, 손가락마다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재빨리 뛰어나가, 대중없는 언니를 나무라며, 모조리 자신의 손으로 옮겼어야 할 막내는, 큰 언니를 힐끗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자신의 글을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좋지 않은 기억력으로,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처럼, 그 넓은 매장을 돌아쳤을 것을 생각하니, 울컥 설움이 솟아올랐다. “막내가 좋아하는 것 전부 사오느라 늦었어.” 비닐봉지 안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나는 막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막내가 저렇듯 써내려가지 않았다면, 그 애의 상처가 무엇인지, 무엇에 갈급해하는지, 알 수 있었을까. 봉지 안에서 꺼내진 물건들은, 언니에게서 빠져나온 슬픔을 나에게 집어넣고 있었다. “언니, 마켓 청소해주고 왔어?” 농담이라 느낄 수 없는 말투로 작은 언니가 물었다. 우리의 말은 답답하고 찐득한 슬픔이 점령하고 있었다. 큰 언니는 대꾸 없이 막내에게 미소 지은 후,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시래기처럼 바싹 마른 입술은, 오가며 얼마나 울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언니 계란도 넣어줘.” 언니의 부스스하고 안정되지 못한 행동에, 작은 보상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그로 인해 더 심통이 난건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가 부엌으로 날아왔다. “왜? 이왕이면 라면도 넣어 달라지.” 작은 언니 또한, 동생의 행위를 비꼬는 건지, 아니면 맛을 더하기 위한 팁을 주려는 건지, 애매모호한 어감을 부엌으로 던졌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은, 도리어 인간들을 단순하게 만든다. 오로지 그 충격으로 인한 감정에만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동생=죽음’ 에 대한 충격이 없었다. 다만 죽음에 통상적으로 따라다니는 슬픔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래서 각자의 말에, 자신을 베어내지 못한 감정들이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큰 언니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가슴 높이의 칸막이로 거실과 구분되어졌기 때문에, 동생의 미세한 표정까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바깥바람을 털어내지 못한 언니의 손에서 떡을 뺐고, 엉덩이로 큰언니의 허리춤을 밀어, 거실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언니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언니의 허리춤을 세차게 밀었다. 떡을 내려놓은 언니가 냉장고 문을 열려고 했다. 나는 얼른 냉장고 손잡이를 먼저 점령했다. 그리고 내가 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기위해 고개를 끄덕였고, 떠나길 명령하며, 세차게 거실 쪽으로 머리를 휘저었다. 인간에게 차라리 언어가 없었다면, 지구 곳곳이 이렇듯 성이 나 있지 않을 거란 생각이, 순간 들었다. 감정의 바닥까지 긁어내 언어로 만들어내면서도, 인간들은 아쉬워하고, 답답해하고, 억울해하며, 소금 뿌려진 지렁이처럼 온몸을 뒤틀고 있지 않는가. 마지못해 거실로 향하는 언니의 얼굴은, 초생달보다 창백하고 여렸다. 지금 이 집안에 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막내 뿐이었다. “내가 박하고 결혼하려고 했을 때, 언니들이 막았어야 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파에 않기 위해 엉덩이를 낮추는 큰언니를 향해, 막내는 불판이라도 밀어넣듯 말했다. 큰 언니는 재빨리 엉덩이를 다시 세우고, 얼굴을 창 밖으로 돌렸다. “어린 내가 사람을 알아야 얼마나 알았겠어. 나보다 더 산 언니들이라도 그놈의 인간성을 헤집어 옥석을 가렸어야지. 그저 무조건, 응 응. 귀찮고 짐이 되는 동생, 하루 빨리 남의 어깨에 올려놔버리고 싶었던 거지. 내가 그놈만 만나지 않았었다면, 이런 병도 걸리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놈 때문에 오죽 속을 썩었게. 내가 애들한테 강파르게 구는 것도 그 놈 때문이야. 언니들은 나보고 아이들한테 정스럽지 못하다며 지겹게 말했지? 언니들이 그래야 하는 내 속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려 애쓴 적 있어? 아이들이라면 끔직한 언니들은, 도리어 자신들과는 다르게 태어난 모양이라며, 혀나 찼지.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먹고살기에 급급했더라도, 나는 공부를 잘했으니까, 나만이라도 대학을 보내 전문직업인으로 키웠어야지. 언니가 셋이야. 어떻게 셋이 힘을 합쳐 동생 공부 하나 못 가르쳐? 그저 함께 뒹굴자는 사고방식이야. 언니들은 공부를 못했으니까, 공부 잘한 내가 느꼈던 절망감을 알기나 할까? 지혜와 야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했었을 거야. 그렇게 해서, 나를 변호사나 의사로 만들어 신분상승을 노렸어야 해. 도대체 언니들이 트이질 못했어. 숨겨진 먹이는 도대체 찾을 생각도, 노력도 하지 않아. 언니들한테는 보이는 것만이 세상이고, 존재하는 거야. 물론 그것조차 능력이 닿지 않아 이렇게 살지만 말이야. 언니들은 그런 삶을 나한테도 강요했어. 언니랍시고 동생이 설치는 꼴을 절대 보지 못했잖아. 자신들처럼 지지궁상으로 살아라. 운명에 역행 하지 말고, 남편하고 자식에게 희생하며, 때 되면 밥 차리고, 남편을 하늘같이. 이조시대에 태어났어 야 돼, 언니들은. 이게 뭐야? 내놓으라 하는 인맥도 학맥도 없이, 그렇다고 돈도 없이,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우리와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겠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는 건데, 마냥 우리 타령이겠지.” “야!” 결국 참다 못한 작은 언니가 소리를 지르자, 큰 언니가 황급히 몸을 돌려 가로막았다. 나에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은 척했다. 나는 동생 입맛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떡볶이를 만들 뿐이다. “언니들은 항상 나를 끌고 다녔어. 목줄 맨 강아지처럼. 언니들과 떨어져 내 시간, 내 생활을 즐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어. 그러면 언니들이 슬퍼하니까. 지겨워 그 처량한 얼굴들.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밤마다 다짐하지만, 날이 밝으면 다시 언니들과 섞여버려. 일대 삼이잖아. 똑똑한 언니들 같으면 싹수가 아니다 싶으면, 칼같이 박 서방과의 관계도 일찍 정리해줬어야지. 내가 그만 살고 싶다는데, 나한테 대단한 허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치더니, 결국 시간만 낭비하고, 서로 저주까지 퍼부으면서 헤어졌잖아. 헤어진 후에는 또 어떻고? 새 생활을 찾게 돕기는커녕, 자신들 손에 있는 목줄을 더 잡아당겼지? 애당초 이민오기 싫다는 나를, 혼자 놔둘 수 없다며 끌고 오고, 애 낳고 싶지 않다는 내게 애 낳는 한약이나 들이대고. 언니들은 태어난 환경에서 벗어나려거나, 그 환경을 증오하는 대신, 그것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철저히 인생을 그 속에 끼워 넣은 거야. 나는 싫은데,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언니들은 내 팔과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잖아. 내가 언니들 앞에 순종해야만 언니들은 웃고 행복해 했어. "자, 눈물부터 그렇게 쏟아내 봐 안으로 삼키지 말고. 다 토해내" 남편한테 순종해라. 아이들한테 희생해라. 먹지도 사지도 말고 아껴라. 화장 진하게 하지마라. 정숙하게 행동해라. 정말 지겨워. 물귀신들처럼 나를 잡아끌었어. 아마 언니들이 없었으면,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 쟁반에 구슬 구르듯 그렇게 살았을 거야. 그랬다면, 지금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문구들을 써내려가지 않아도 됐겠지.” 동생을 부모 대신 키워온 큰 언니의 어깨가 쉼 없이 들썩거렸다. 고작 십년의 세월을 먼저 산 것 뿐인데, 언니의 어깨에 지어진 짐은 너무 무겁고 잔인했다. 언젠가 언니가 말했다. “바람이 불어, 아주 세찬 바람이 말이야. 나를 산산 조각내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으면 좋겠다. 바람의 힘을 빌리면, 나도 가볍게 날아 갈 수 있을까?” 사그라지는 햇빛을 받으며, 내장이 전부 날아가 버린 듯 서있는 큰언니가,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투명해보였다. 혼자서는 설수 없었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합침만큼 불행도 비껴가려니 믿었다. 그래서 각자의 정체성은 희생되어져야 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데 힘을 합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힘을 합쳤다. 우리가 안정이라며 둘러친 울타리 밖으로, 막내를 나가지 못하게 했고, 누구도 막내의 손을 붙잡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사랑이고 보호며, 우리들의 의무라고 믿었다. “언니들이 죽은 후, 남은 인생 내 멋대로 살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 내가 먼저 죽어야 되잖아. 아니, 어떻게 이혼한 동생을 칠년 동안 혼자 살게 놔 둘 수가 있어? 자기들은 믿던 곱던 남편이 있으니 외롭지 않겠지. 자신들한테 싫증나고 귀찮은 남편이라고, 나또한 그러리라 생각한 거야? 그런 이기주의적인 사랑이 어디 있어? 내가 언니들하고 있으면, 행복과 안정을 얻는다고 믿은 거야, 안 그래? 천만에, 언니들 사랑은 가짜야. 아주 질 나쁜 모조품이었다고. 자기들 설움에 나를 옭아매고, 자기들 행복에 나를 승차시키고, 자기들 감정 뒤치다꺼리나 하게 하고. 내가 왜 암에 걸렸겠어? 그렇게 행복한 동생이 말이야. 언니들 동생이 아닌, 여인으로 나를 봐 준적 있어? 없을 걸,” 결국 큰 언니는 버티지 못하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센 불에 보글거리며 끓고 있는 떡볶이는, 어느 영화가 그려낸 지옥의 불구덩이 같았다, 나는 불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일은 절대로 빗겨가는 일 없고, 좋은 일은 번번이 슬쩍 지나쳐버렸던, 우리의 인생으로 본다면, 이번 막내의 암 선고를, 이웃집 이름 모를 여인의 불행 쯤으로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은 불안감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죽음을 사실화시켜, 저렇듯 억울함을 호소하는 막내를 보며, 더 이상 투정이라 밀쳐놓을 수 없었다. “나도 저 나무들처럼 다 떨어내버리고 홀가분해졌으면 좋겠다. 얼마나 가벼울까?” 창쪽으로 돌아 앉아 동생의 하소연을 듣던 작은 언니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파를 썰어 넣고, 가장 화려한 접시를 찾아 떡볶이를 올려놓았다. 통깨를 뿌리고,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폈다. 동생 앞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동생은 떡볶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전원이 나간 텔레비전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생은 검은 화면 속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화면 안에서 동생의 표정과 마주쳤다.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얼른 동생을 외면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떡볶이는, 갓 봉우리를 열기 시작한 순한 장미색을 버리고, 썩은 핏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도록 동생은 포크를 집지 않았다. 나 또한 동생이 고맙고 맛있게 떡볶이를 먹어 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떡을 사러간 큰 언니나, 그것을 만든 나나, 모두 동생의 아픔에 대한 속죄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떡볶이는 그렇게 말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입 언저리에 붙어 있는 종기딱지를 세차게 잡아 뜯었다. 선홍색 피가 뚝, 하얀 카펫트 위에 떨어졌다. “언니 피나잖아? 카펫트에. 어머머 지워지지도 않는데.” 동생은 민첩하게 걸레와 락스를 가져와, 필요 이상의 힘을 주며, 한 방울의 피를 제거했다. “도대체 내 소리는 누가 듣고 있는 거야? 모두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어? 어떻게 자신의 몸에 난 딱지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있으며, 창밖 풍경을 눈에 넣을 수 있는 거야? 정말 끝까지 이기적이야. 내가 이런 언니들을 위해, 서커스단의 아기 곰처럼 재롱을 떨고 산 거야.” 큰 언니와 작은 언니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미 손가락으로 내 몸에서 탈출하려는 또 다른 피를, 힘주어 막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울어야했다. 나는 울었다. 눈물이 되어 쏟아져야 할 슬픔을, 억지와 심통으로 풀어내려는 동생의 입을 막아야했다. 아니, 그것은 나의 울음이 이미 터지고 난 후, 떠오른 생각이였다. 큰 언니가 울었고, 이어 작은 언니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내의 눈은 도리어 기다렸던 먹이감이라도 포착한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수십 년 세월만큼 깊어진 막내와의 감정의 골은, 끝도 없는 평행선이 되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언니들 동생이었어? 스스로들 생각해봐. 큰 언니는 언제나 서럽고 슬픈 모습을 들이대며, 자신을 동정하라고 명령했어. 작은 언닌 ‘욕망의 전차’에 나오는 불랑쉬처럼, 불안과 허세로 항상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 서 있었고, 셋째 언니는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에 포박당해, 현실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잖아. 나는? 언니들 말해봐. 나는 언니들에게 어떤 동생이었어? 나를 보호했다는 말은 하지마. 나는 단연코 언니들에게 보호받은 것 없어. 나는 인생과 투쟁해보지도 않고 지쳐버린 언니들을 위해, 노래하고 춤췄어. 내 생활은 언제나 뒷전이고, 언니들이 부르면 달려가고, 언니들이 부르지 않아도 달려가야 했어. 그래서 나에겐 남편이 있으면 안됐지. 언니들은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이혼 후, 나에게 남자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던 거야.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와야 하거든. 내가 언니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했던 것 같아? 천만해, 나는 언제나 허전했어. 너무 허전해서 밤에 울기까지 했어.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 주지? 누구한테 내 가슴 속을 들여다 봐 달라고 하나. 어째서 자신들의 불행은 힘들어하면서, 동생의 불행은 보지 못하나, 하면서. 나는 언니들 때문에 친구도 없어. 친구 사귈 시간이 있었어야지. 자, 이제 내가 죽을지 몰라. 아니, 죽을 거야. 그러면 언니들은 어떻게 할까? 큰 언니는 자기 탓이라고, 그 탓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울어대겠지? 지금도 아마 쉼없이 마음 속으로 울고 있을 거야.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까지 끄집어 올리면서. 작은 언니는 더 불안해하겠지. 손은 더 떨리고,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지겠지. 화장은 더 진해져 화장하는 시간이 늘어날 거고, 수시로 쇼핑몰을 돌며 사지도 못할 것들을 기웃거리다, 그것들을 거친 욕망으로 만들어 가슴속에 집어넣겠지. 언니는 관에 누워있는 나와 마지막 작별 인사할 때에도, 그 화장을 지우지 않을 거야. 셋째 언닌? 제일 문제가 언니야. 언니는 칩거하겠지. 자신의 인생도 다 살지 못했으면서, 지구상의 모든 인생을 허무하다, 싸잡아 슬퍼하겠지. 허무는 허무를 낳고, 결국엔 그 허무가 인생을 어둠 속으로 끌고 내려가, 파멸시키는데 말이야. 그까짓 글 나부랭이로, 어떻게 땀 흘리는 사람들의 진실된 하루를 표현할 수가 있다구.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려봐. 개미행렬 같은 전조등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져. 다시, 어둠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그들 차 위에 무엇이 올려져있을 것 같아? 하루 양식인 빵 한 조각. 그 빵 조각이 의미하는 게 뭔지 알아. 단지 위장만 채워주는 탄수화물 같아? 아니야, 그 빵은 희망이고 정열이고 투쟁이야. 살아가는 이유인 거지. 언닌 이 때가 기회다 싶겠지. 언니의 허무주의를 증거할 수 있는 완벽한 증거니까. 살아보려고 애쓰던 어린 동생이, 속절없이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흔적조차 없이 소멸된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부질없다고 단정짓겠지. 내가 마음 편히 죽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들이야. 언니들은 나를 편히 죽지도 못하게 하잖아.” 죽음이, 가슴 바닥까지 긁어낼 수 있는 용기를 준걸까. 우린, 어쩌면 이토록 동생에게 낱낱이 해부되었을까. 소위 글을 쓴다는 나는, 어째서 도를 넘고 있는 동생의 감정을 잘라 낼 수 있는, 말 한 마디 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글로는 수도 없이 죽고, 수 천 년 살아온 듯 멋을 부리고. 인생살이에 도통한 사람처럼 온갖 척을 다했으면서 말이다. 나는 너무 답답해 가슴을 쥐어 잡고 끙끙거렸다. 동생이 갑자기 일어나, 나의 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울어, 울란 말이야. 그렇게 말고 엉엉 소리 내서. 언니가 우는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야. 언니는 한 번 쯤 이렇게 울고 싶었어. 도대체 지성적으로 보여지길 바라는 이유가 뭐야? 그게 세상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데? 돈 없는 사람은 감정에 충실해야 편한거야. 언니가 그랬지? 전국노래자랑에 나온 사람들처럼 순수하게 살고 싶다고. 자, 눈물부터 그렇게 쏟아내 봐, 안으로 삼키지 말고. 다 토해내.” 동생은 다시 한 번 세차게 등을 내려쳤다. 엉엉엉, 건전지를 집어넣은 것처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안해, 미안해, 너를 힘들게 해서. 나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 불안과,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이 만들어 낸 가식적인 나를, 문학으로 포장해 거리에 내놓고, 누군가 쳐다봐주길 초조하게 기다리며 살아온 시간들.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밀랍인형 같은 나. 동생은 세상에 보여 지지 못하는 나의 글이, 나의 목을 조이고, 나의 삶을 황폐화 시킨다고 말했다. 숨길 글이라면 도대체 쓰는 이유가 뭐냐며, 종 주먹을 들이대기도 했다. 그 말들이, 무수한 아픔 속에서 잉태되어 나온 말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오래된 무성영화가 끝도 없이 내 머릿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자신이 찔러 터트려버린 나의 눈물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 언니가 무릎을 힘겹게 끌고 내게로 와, 함께 울기 시작했다. “다, 내 잘못이야. 너희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내가 똑똑했다면, 너희 가슴에 접혀진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도록….” 이제와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듯, 언니는 말을 삼켰다. “너희들을 의지하면 안됐는데, 너희들 보다 강해져, 힘차게 끌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나약함이 동생들 인생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에, 큰 언니는 슬퍼했다. “그래, 큰 언니도 울어. 단 한 번도 촉촉함을 느낄 수 없는 언니 얼굴, 자신이 살아온 희생적인 삶을 세상이 알아주길 애원하는 그 비루한 모습, 동생들에게 줬으면 그만이지, 그 시간들을 보상해내라는 듯, 확인하고 확인하는 언니. 그래서 우리가 항상 언니 앞에서 죄인이 되어야하는 거지같은 기분. 큰 언니 알아? 나에겐 24시간이 짧았어. 나에게만은 48시간이 하루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니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웃을 수 있게 재롱을 떨었으면 좋겠다. 누가 알까, 동네방네에 알려진 우리 사랑이, 이렇게 고통의 덩어리라는 걸” 정수리 한가운데 무리지어 솟아오른 흰머리가, 사그라지는 언니 몸의 무언가를, 사악하게 빨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거니? 듣자듣자 하니까 얘가 끝이 없네.” 작은 언니가 끼어들었다. 참 오래 참고 있었다. 동생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잠깐씩 작은 언니를 훔쳐보며, 말을 이어나갔었다. 진하게 바른 마스카라는 작은 볼을 점령했고, 유난히 앙상한 두 손은, 존재만으로도 버겁다는 듯, 연거푸 떨고 있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공통된 설움 앞에서, 작은 언니의 천방지축 감정은 아직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작은 언니는 접시에 떡을 하나 건져 올려놓고, 포크로 잘게 토막을 내는 것으로, 분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쥐색에 은빛이 묻어나는 브라우스 칼라가 형광등에 반사되어, 빼곡히 자리 잡은 목주름을 잔인하게 비추고 있었다. 말을 던진 작은 언니가, 이제 내 차례이니 해보라는 듯이, 동생을 향해 저돌적인 고개짓을 던졌다. 잠깐 숨을 고른 동생이, 자세를 바꿔 앉으며 공격태세를 갖췄다. “언니는 그 화장 좀 지워. 절대 못 지우지? 동생 죽음과도 바꾸지 못 할 거야. 언니 화장은 언니의 그 알량한 자존심이니까. 언니 알아? 그 화려한 화장이, 큰 언니 후줄근한 것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 왜 맨 얼굴로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해? 언니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왜 허전한 마음 가리려고, 예쁜 얼굴에 가면 쓰고 다녀야 되는데? 그런다고 가려져? 천만해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거든.” “또, 내화장이 문제니? 내버려두라고 했지?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 해라. 응?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뭐 어쩌라고. 화장 안하던 사람도, 관 속에 들어갈 때 화장하는 것, 너 모르니? 마지막 가는 길, 화장하고 가잖아, 나는 매일 죽는 날을 기다리는 거야. 너, 죽는 것 그것 아무 것도 아니야. 너무 위세 떨지 마라. 나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니,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너무 확실하니까, 일상 속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 뿐이지. 살기만도 정신이 없는데.” “언니!” 큰 언니와는 달리, 자신의 공격을 가벼이 받아치는 언니를 향해, 막내는 앙칼지게 소리질렀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동문서답이야 지금? 언니의 그 도가 지나친 화장은, 다른 사람들 화장과는 의도가 다르잖아. 언니는 얼굴에다, 설움, 불안, 욕망, 조급함, 그런 것들을 범벅으로 칠한 거잖아.” “너, 너무 비약한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만해라.” 그래도 설움만 삼키는 큰 언니와는 달리, 작은 언니답게 막내의 말끝마다 딴지를 걸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니화장에 대해 말한 적 있어? 사실 매일 하고 싶었지. 어떤 때에는 락스를 갔다가 언니 얼굴을 싹싹 문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죽음을 목에 건 자의 특권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 전부 할 거야. 죽고 나서 할 말 못해, 귀신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보단 낫잖아?” “그래, 귀신으로 나타나지 말고 할 말 다 하고 가라.” 비로소 떡볶이가 눈에 들어왔는지, 막내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포크가 떡을 찌르기 전에, 내 눈이 먼저 떡에 닿았다. 떡볶이는 내버려진 것에 대한 원망처럼, 마른 보호막을 치고 있었다. 동생은 한 번에 막을 걷어내더니, 가지런히 정돈된 떡을 사정없이 흐트러트린 뒤, 포크를 떡 사이에 밀어 던졌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나 죽는 날을 시점으로, 화장을 지워. 언니 얼굴이 저 찬란한 태양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마스카라도 칠하지 말고, 늙은 산딸기 맆스틱도 칠하지 말고, 코 양 옆에 기둥도 세우지마. 한 번 그렇게 해봐.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나. 궁금하지 않아?” 누렇고 둥근 보름달이 음흉스럽게 거실 안을 드려다 보고 있었다. 창백한 초생 달이었으면, 우리가 좀더 이성적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울음을 끝낸 후, 나는 보름달을 피해 부엌으로 갔다.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애처로운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엌으로 오자, 동생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위장이 채워지면 좀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혹여 더 하고 싶은 말이, 부질없다 느껴지지 않을까, 무엇이 먹고 싶을까. 이 순간 동생이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왜 나는 모르는 것일까. 나는 두 손을 성경책 위에 올려놓듯, 커피포트에 올려놓고, 또 다시 눈을 감았다. “언니, 커피 타려구.” “응” 나는 반가움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우리, 다방커피 타먹자. 아주 진하게, 커피도 많이 넣고, 프림도, 설탕도, 듬뿍듬뿍” “그래” ‘듬뿍듬뿍’ 이란 단어에 동생은 필요 이상의 액센트를 집어넣었다. 우리 네 자매의 삶에는 ‘듬뿍듬뿍’ 이란 없었다. 바닥에 흩어진 볍씨를 긁어모으듯, 그렇게 살았다. 노력과 수고만큼, ‘듬뿍듬뿍’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우리도 예외 없이, 궁핍이란 단어를 삶 속에 박음질한 채 살아오고 있었다. ‘듬뿍듬뿍’이란 단어에서 이토록 다정스럽고 풍요로움이 흘러나오는지,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능력있는 여자와 결혼 시킬 거야. 살림 잘하는 것, 나는 원하지 않아. 아이들? 내가 키워 줄 거야. 현모양처의 기준이 달라졌어. "살려 주세요. 우리 언니들 모두 보낸 후 나를 데려가세요" 옛날 초등학교 책에 나오는 영희는 더 이상 이 시대에 없어. 만약 있다면, 그영희는 무능한 거야.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돈 없으면 행복을 지킬 수 없어. 이 시대는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대거든. 욕망이 뭐야, 더 좋은 것, 더 맛있는 것, 더 멋있는, 더 행복한 것을 추구하는 거잖아. 옛날에는 비교할 수 있는 행복의 기준이 적었지. 하지만 요즘은 어때? 모든 상품가치나 삶의 질이 돈에 의해 정해지잖아. 옛날에는 제주도지만, 지금은 하와이로, 티코에서 벤즈로, TV는 어떻고 돈에 따라 선명함의 차이란, 옛날에는 차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핸드폰이 있었나, 여행? 고작 내 나라였지. 교육은 어떻고, 한글이나 한문이면 됐지. 예능교육? 절대적 교육은 아니였지. 돈에 노예가 됐다고 어떻게 손가락질 할 수 있겠어. 얼마 전에, TV에 나온 젊은 여자연예인은, 상대 남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더군. 남자가 가난하기 때문이래. 얼마나 솔직한 거야.” 막내가 영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도, 역시 우리들이 있었다. 무능한 영희들인 우리를 더 이상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능한 형부들을 내치고 힘차게 삶을 개척하기는커녕, 도리어 동정과 연민으로 붙들어 매고, 웰빙과 여행과 여가가 화두가 되어 버린 요즘 세상에. 그 끝자락도 붙들지 못하고 사는 언니들의 삶에, 더 이상 그 어떤 동정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무능한 언니들 누가 지키라고, 우리 언니들 누가 웃게 하고, 누가 데리고 다녀? 안돼, 나는 절대 죽을 수 없어. 죽기 싫어. 살려 주세요. 우리 언니들 모두 보낸 후, 나를 데려가세요.’ 동생은 지금, 이렇게 울부짖고 있는 중이였다. 나는 커다랗고 새하얀 머그잔에, 넘칠 만큼 커피를 담아 동생에게 내밀었다. “음, 맛있어.” “어디 봐.” 작은 언니가 동생의 커피를 빼앗아 한 모금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니까, 좋네. 나도 한 잔 타줄래?” “큰 언니는?” “나는 밤에 커피 못 마시잖아.”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것조차 무능하다는 듯이, 큰 언니가 구슬프게 말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더 타서 작은 언니에게 건넸다. 언니 입술에 묻어있는 붉은 맆스틱이 하얀 머그잔에 옮겨졌다. 그래도 언니의 작은 입술은 여전히 붉었다. 떡볶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려는 나를, 막내가 주저앉혔다. 나에게 건너올 말이 남아있다는 듯이 숨을 골랐다. 이미 거실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 만들어낸 횡포만 있을 뿐이었다. “언닌, 말을 해.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큰 언니 넉두리나, 작은 언니 진한 화장처럼이라도. 언니 글쓰기는, 언니를 외지고 어두운 곳에 고립시키고 있어. 언니를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긴 커녕, 언니가 쓴 소설 속 주인공에 갇혀, 현실과는 자꾸 담을 쌓고 있잖아. 언니 소설 주인공들은 현실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이야, 다 정신병자야. 그런 사람들과 살고 있으니, 현실이 두렵고 무섭지. 그리고 썼으면 세상에 내보내야지. 신춘문예에 응모하고, 갖가지 공모전에도 보내보고, 정성 들여 가꾼 언니자식을, 세상에 내보내야 성장할 거 아니야. 맞고, 터지고, 짓밟히더라도, 그 이유를 알아야 발전이 있지.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자신의 글이, 자신의 숨통을 틀어쥐는 거지. 그리고 언니는 너무 고상해. 그래서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내가 그런데 남들은 어떻겠어? 언니 앞에선 춤도 못 추겠고, 섹스 이야기나, 저질스런 농담도 못하겠어. 언니와 대화를 하려면 미리 말을 정돈시켜야 돼. 그 말은, 언니 가슴에 철퍼덕하고 안길 수 없다는 말이야. 그러면 언니가 외롭게 세상을 살아야 돼.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 누가 복잡한 사람과 함께 있고 싶겠어. 그러니 적당히 풀어놓고 살아. 칭찬할 것도 있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꿈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것, 하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방법이, 현실과는 맞지 않아.” 나를 이제껏 지탱하고 있던 동아줄이 맥없이 올을 풀어내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마음을 비우고,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질 몇 초의 순간만 기다리면 된다. 차라리 마음이 이렇게 편할 수가. 보이지 않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포장하고 포장해 논 나의 정체성이, 막내에 의해 한 순간에 발가벗겨진 것이다. 비록 내보일 수 있는 용기는 없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으로, 남과는 다른 사람으로 비쳐지길 원했다. 그것마저 없다면, 평범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쓴 글마다 동생에게 내밀었는지도 모른다. 막내가 나를 차별화시켜 주고, 막내의 입을 통해 주변사람들이 차별화시키도록 말이다. 나는 웃었다. 웃지 않고는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도 죽고 싶다. 저 계집애보다 먼저 죽고 싶다.’ 끈끈이에 유인된 파리처럼 허우적대는 언니들의 모습, 그것이 막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큰 언니와 작은 언니의 성난 표정이 막내를 쏘아보고 있었다. 분위기에 전혀 맞지 않는 나의 웃음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죽음으로 무장한 특권이라도, 심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막내가 두 언니의 눈길을 피했다. “역시 너는 섬세하고 똑똑해.” 웃음을 멈추고, 두 언니의 시선을 막내에게서 거두기 위해, 나는 태연을 가장하며 말했다. 나의 감정을 숨기는 일, 그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아, 배고프다. 우리 뭐 먹을까?” 막내가 만족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막내의 식욕을 반기며, 큰 언니가 재빨리 일어섰다. “새우 사왔는데 볶음밥해 줄까?” “좋아 맛있게 만들어줘. 우리 밥 먹고 다시 의논하자.” 우리는 동생 말에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보았다. 창밖, 사라진 보름달이 동생 얼굴위로 옮겨 앉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볶음밥을 탐스럽게 먹고, 파인애플로 후식까지 끝낸 동생은, “그까짓 12월 달 달력도 뜯어. 이리 줘. 달력이 무슨 소용 있어. 어차피 경계선이 무너져 버린 시간에 살고 있는데” 하며 볼펜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서로 설거지를 하겠다며 부엌으로 몸을 피했다. “언니들 다 이리와 앉아. 설거지가 뭐가 그렇게 급해? 나 죽은 다음에 해도, 언니들에겐 시간이 남아돌잖아.” 동생이 더 세차게 우리의 목줄을 잡아끌기 전에, 순순히 동생 앞에 무릎 꿇고 앉았다. 도대체 세상 사는데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무슨 소용인가. 동생은 하얀 종이 위에 ‘경비’ 라고 썼다. 뒷면에는 20세기 천재화가 달리가 애증으로 그려낸 프로이트의 초상화가, 죽어있는 시체를 일으켜 앉혀 논 것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생의 감정이 불안했기 때문에, 셋은 숨죽이고 동생이 써내려갈 다음 활자를 기다렸다. ‘비행기표, 호텔비, 교통비 음식값….’ 아! 여행을 가려나 보구나. 신상 공격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감지한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라. 어디든 갔다 와라. 사채를 끌어서라도, 너의 여행은 호화스럽게 보내주마. 그렇게 속죄할 양이었다. “자 언니들, 우리 어디로 갈까?” “우리도?” “우리도? 그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동생을 혼자 보내려고? 정말 그런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아니, 아니, 우리도 가야지.” 큰 언니가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언니! 직장은 어쩌고?” 큰 언니의 현실을 작은 언니가 일깨웠다. “언니! 지금 직장이 문제야? 평생 다녀 지금 떼부자 됐어? 행복해? 우리가 한 달 여행 떠난다고, 길에 나 앉지 않아. 다들 직장 그만둬. 내일 병원 결과 보고 바로 떠날 거야. 어디 가고 싶은지 말들 해봐. 나는 한국은 싫어, 너무 가고 싶지만, 이런 기분으론 가면 안돼. 추억이라곤 모조리 처량한 것들이라, 기분을 도리어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새로운 곳으로 가자, 멋진 곳으로. 죽기 전에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곳으로. 세계 불가사의로 지정된 곳들 1위에서 10위까지 돌아볼까? 그래, 그 앞에서라면 아마 살고 싶은 욕망 따윈, 이슬로도 목이 꺾기는 가냘픈 풀꽃처럼 생각될지도 몰라. 어때 언니들은?” 어차피 동생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조금 나아진 듯한 동생 기분을 지속시키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과장된 흥분을 담아 말했다. “와, 환상적인 계획인데.” “비용은 모두 내가 댈 거야. 언니들은 한 푼도 안내도 돼. 아, 내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을 그 오랜 세월 한 건지. 톨스토이 작품 중에, 자신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영원히 헤지지 않는 가죽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한 작품, 기억나? 내가 그 짓을 한거야. 노후에 애들한테 손 내밀지 않으려고, 조금씩 모아둔 돈이 있거든. 아무리 쪼들려도 그 돈은 건들이지 않았어. 우리 넷이 여행하기엔 충분한 돈이야. 그러니 우리 생애 처음 호화스러움을 느껴보자.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좋은 호텔에서 묵을 거야. 하루 온 종일 행복해하자. 작은 언닌 화투도 꼭 챙겨야 돼. 셋째 언닌 여행 떠날 때까지 고스톱 배워야 하고. 우선 옷과 신발을 사야겠어. 우리 모두의 옷을.” 아, 이럴 수가! 동생 죽음을 위한 마지막 여행 소나타에, 내 마음이 춤을 추고 있다니. 더군다나 재빨리 어두운 옷장 속을 뒤집고 있으니 말이다. ‘저런 여우같은 것. 그렇게 돈을 짱 박아 놓다니’ 작은 언닌 분명 이렇게 되뇌이고 있을 거란 걸,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얼굴은 소낙비에 말끔히 씻긴 동백나무 잎처럼 찬란한 빛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번엔 그 누구도 청승떨지 마. 여행지까지 몸에 밴 궁상을 떨어내지 못하고 온 사람은. 차비도 주지 않고 어딘가에 버리고 올 거야.” 앞서가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유치원생이 된 듯, 우리는 말 잘 듣겠다는 의지를, 의연한 눈빛으로 동생에게 전달했다. 잠시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는 동생이 모아 둔 돈이 얼마인지 의견을 주고받았고, 대략, 여행 규모로 미루어, 삼만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잠정 결론을 내렸다. 동생의 여행계획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돈은 누구를 위해 모아 두었는지. 어째서 우린 막내 앞에서, 언니이길 포기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동생의 힘이 죽음으로 얻어진 것이며, 우리는 그 힘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린, ‘끝’ 이 될 수 있는, 그 죽음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병원으로 향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너무 묵혀 썩기 시작한 진실을 모두 꺼내, 우리에게 내보인 동생의 발걸음이 가벼워서인지, 아니면 어제 하루, 죽음의 공포와 처절하게 싸운 결과 얻게 된, 면역체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한, 여행에 대한 들뜬 기분에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뿔테안경 너머로 우리를 건너다 본 의사는, 자신이 동생을 죽음에서 건져올린 듯,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도, 자궁만 절제하면 별 문제는 없습니다. 전이가 되기 전에 발견된 것을 천행으로 여기십시오. 수술날짜는 다음주 월요일입니다.” “너, 여행은 가야 돼. 계집애, 시건방지게 언니들이 어떻고 어째? 말 못하다 죽은 귀신이 들어 왔었나.” “막내는 한 번 말한 건 꼭 지키는 애잖아.” “자, 우리 옷사러갈까?” “아직, 더 모아야 돼. 신나게 놀려면 충분치 않아. 누가 어제 뭐라고 했어?” 부서지는 태양 속으로, 겨우 내려놓은 짐을 다시 짊어지고, 하지만 아주 가볍게, 동생은 뛰어갔다. 어제 하루 동안 쏟아낸 만큼,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어야 된다고 다짐하며, 우리도 동생이 뛰어들어간 빛 속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우리가 빠져나온 어둠의 동굴이 자폭하고 있었다. <끝>